[~/.thoughts] 돈에 관하여 생각하다 횡설수설

내 삶의 목표는 언제나 어딘가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닌 내가 내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유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깊이 생각해 본적도 딱히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돈이라는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였기 때문이다.

(딱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것’이라 표현하겠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돈이라는 건 비중이 낮다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었고 돈이란 그져 인간의 욕심과 허영심 때문에 돈이 계속 부족하다 느끼며 돈에 얽매이는 삶이 시작된다고 느껴 돈을 최대한 경계하였다.

근데 이렇게 말하는걸 보면 내가 그동안 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단걸 알 수 있다.

돈을 도구로 바라보고 돈을 수단으로 바라보면 되는 것을 나는 돈의 결과론적인 나쁜 면만 보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돈에 대해 무지했었고 깊이 생각해 본적도 딱히 없는것 같다.

몇일간 돈에 대해 생각해 봤다.

돈이 가져오는 긍적적인 방향과 돈의 장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돈은 무겁다.

돈은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자유롭게 선택하는데 도움이된다.

여기서 중요한건 “도움이 된다” 이다.

돈은 확실히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된다.

하지만 그만큼 선택을 하는데 돈의 개입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고 그 선택에 돈이 크게 잠식할 수 있다.

물론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다르다.

돈이 없으면 나에게 선택지는 하지 못한다는 선택지가 하나이지만

돈이 있으면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선택지가 두개가 된다.

단, 이 선택 과정에서 돈의 개입이 정신줄을 놓으면 크게 작용한다는 무서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뭔가를 사거나 뭔가를 하는데 돈이 충분히 있게 된다면 우리는 하는 쪽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뇌 시스템 자체가 끊임없는 보상을 바라기도 하고 본능상 당장의 이익을 얻는것 선호하기 때문이다.

돈이 충분히 있는데 안할 이유도 사라지고 하지 않을 이유마저도 여러가지의 인지부조화 후의 자기합리화 과정을 거치면서 흐려지기 때문이다.

본능을 거스르는건 매우 힘들다. 편도체에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면 실행 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일단 실행 시키면 후회하는건 다른 뇌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보상을 원하는 편도체 입장에서는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돈이 있으므로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차라리 돈이 부족함으로서 못하는게 선택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명한 선택을 할 수있고 돈이란건 도구에 불과하다는걸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선택의 과정에서 자유를 줄 수 있고 더 많은 가능성을 염두할 수 있다.

돈은 도구일 뿐이라 완벽히 통제한다는건 불가하기 때문에 큰 돈이 쥐어 졌을때 본인이 통제가 가능한 사람인지 부터 파악하고 돈을 저축하는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본인 부터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아 봐야 의미가 없다. 선택으로 인한 자유도 누리지 못하고 고민과 후회만 반복하는 스트레스만 있는 삶을 살아갈뿐이다.

나는 미니멀리즘의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3년째 하면서 느낀거지만 도구는 많을 수록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도구들을 계속해서 지키고 하루하루 지켜내기 위해서 생각 보다 많은 신경을 쓰고 체력을 고갈 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부족한 체력은 본질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들고 탁하게 만들어 우리의 삶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길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면 길이 명확하게 보이고 하나의 길만 보여 우리가 길을 해매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해준다.

그런 이유에서 미니멀리즘의 삶은 흐려진 본질을 보는 눈을 닦아준다. 단순히 물건을 버리고 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서 본인에 더욱더 집중하고 여유 있는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미니멀리즘의 본질은 마음을 비우고 우리 삶의 본질을 찾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 미니멀즘이지 불교적, 기독교적 아니 다른 종교적 가치관, 철학과 크게 다른건 없다. 불교 가치관으로 표현하자면 ‘무소유’고 기독교 가치관으로 표현하면 ‘청빈’ 이다.

이런 미니멀리즘 가치관은 갑자기 나온게 아니라 인류역사의 시작부터 우리와 함께 해왔다는건 확실하다. 근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아직까지도 본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고 추구하고 있다.

본질을 추구하는 삶을 다들 원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혹도 많고 신경쓸 것도 많고 특히 재미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인이 지금 선택하는게 본질에 위배가 된다는걸 알면서도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게 인간이다.

그렇기에 본질을 추구하는 삶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존경 받을 만한 일이다.

그렇기에 본질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귀하고 찾기 어렵다.

또한 본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보상은 확실하다. 차별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이 본질을 보는 눈을 가지기 힘들고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든 세상속에서는 더욱더.

결국 돈도 도구이다. 하나의 도구가 더 추가된거다. 도구가 추가된 만큼 신경쓸 거리가 하나 늘었다. 우리는 추가된 도구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추가된 도구에 신경을 쓸 수 있을 만큼 본인이 여유가 있고 체력이 있는가? 그럼 돈을 모아도 된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도구는 오히려 본인의 삶에 독이 될 뿐이다.

우리는 주체적인 삶에 행복감을 느낀다. 주체적인 삶이란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는 삶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도구 앞에 우리의 자유와 선택권을 자진 반납하고 있다.

수많은 서비스들이 편리함이라는 가면 뒤에 우리의 자유와 선택권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서비스들이 우리의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읽을 권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무료로 또는 몇십원 몇백원이라는 소득을 위해 스스로의 권리를 싼값에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그게 당연하고 현명한 수입을 얻는 것처럼 앱테크라는 멋진 신조어도 생겼다.

나는 너무 무섭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독제자에 의해 자신의 권리를 강제로 빼앗기는게 아닌 자발적인 참여로 본인의 데이터와 권리를 내어주고 있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이런 시대적 물결속에 흘러가는 한 사람으로서 두려운건 사실이다. 심지어 본인이 선택했으니 주체적인 삶에 포함되 몇백원의 수입에 행복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물론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지는건 당연하겠지만 이런 행태가 점점 당연하고 현명한 시각으로 변모하는 것 같아서 두렵다. 수천년 인간의 본질 특성상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끊이지 않고 지속된다면 긍정적인 결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