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때 부터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랬었다.
친구나 가족에게는 정말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금방 지나갈 사람,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오히려 내 본모습을 보여주고 솔직한 대화를 즐겨했다.
왜일까?
처음부터 이랬던것 같기도하다.
초중고딩때도 학년이 바뀔때마다 반이 달라지고 구성원이 달라져서 좋았다.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물론 많았지만 적어도 나는 좋았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싫었던것도 아니고 친구가 없던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장도 하고 전교부회장도 나갈 정도로 교우관계를 적극적으로 임했다.
학년이 바뀔때마다 아쉬운 마음보다 새로 사귈 친구들에 대한 기대와 두근거림으로 가득했다.
친구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이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적어도 여태까지는.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지내왔었고 그렇게 30대가 되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나같은 케이스가 드물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고민을 해보았다. 나는 왜 여태까지 이렇게 살아왔을까?
단순히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냥 흥미가 떨어져서? 아니면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아서?
음... 사실 다 이유에 포함된다.
처음에는 흥미가 떨어졌던게 맞다. 학교라 해봤자 한 동내에 있는 또래 애들이였고 동내 애들이라 해봤자 다 거기서 거기라 흥미가 금방 떨어졌다.
그리고 어리면 어릴 수록 부딪힐 일이 많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교우관계이다 보니 금방 친해지고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두번째는 사춘기 이후 즉, 중학생 이후 부터이다. 몸은 아직 어리지만 머리는 좀 큰 학생으로써 이제 슬슬 조심히 접근하고 본인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친구는 거르면서 서클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금방 친해지지는 못하고 학년이 끝날때까지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 친구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흥미가 떨어졌다기 보다는 한정된 교우관계에서 오는 부담감이 컸다.
같은 무리에서 잘 지내더라도 수가 틀리면 그 무리에서 배제되기 쉬웠고 전처럼 쉽게 다른 무리에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그 무리에 맞춰 행동해야 했고 나를 제단해야했다.
세번째는 갓 성인이 된 이후부터이다. 성인이 된 후로 한 동내에서 봐왔던 친구들이 아닌 정말 많은 지역과 나와다른 배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정말 다양하고 많다보니 흥미가 떨어질 일도 없었고 부담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를 간과했다. 별의별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만큼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을 일도 많았다.
진지하고 애뜻한 관계가 될 수록 상처는 더 크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료하느라 감정을 소모하는 내 자신이 너무 피곤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는 바람과 같은 존재, 바람과 같이 잠깐 있다 사라지는 그런 인간관계를 더욱더 선호하게 되었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접근하기 쉬웠고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는게 좋았다.
내 배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일 수록 좋다. 나를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일 수록 좋다.
여행에서 처음 본 사람, 일을 하면서 처음 본 사람, 네트워킹 파티에서 처음 본 사람.
시덥지 않은 얘기를 하기 딱 좋은 상대이다.
새로운 인연은 언제나 두근거린다. 부담감도 없고 상처를 줄 일도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 맞지 않으면 그 날부로 보지 않으면 되고 만약 좋은 기회가 된다면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처음보는 자리에서 내 본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면 흥미를 가지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흥미를 가진 사람도 몇번 보다보면 불편해하고 떠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내 주변에는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만 남게 되었다. 내가 언제 없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인물들.
아쉽게도 소속감을 가져본적이 없다. 그래서 소속감에서 오는 행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 30년 밖에 삶을 살아 보지 못해서 소속감에서 오는 행복을 느낄 기회는 많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오늘도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드라마를 본다.
아, 가족은 이 세개 모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