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나를 진심으로 만드는 사람이랑 일하고 싶어

겐바에 갔다온 후 주절히 주절히 떠드는
공연장에서 아이돌들은 팬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지만 팬들은 아이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에서 응원하는데
어떻게 보면 아이돌들은 팬들에게 거짓말을 하는거고 팬들은 아이돌들에 진심을 다하는 이러한 가식과 진실이 공존하고 부딪히는 공간이
왜 흥미롭고 매력적이게 느껴지는지 내 감정에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 감정이 어떤 의미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정도 정리는 할 수 있었다.
가식(연출된 환상)과 진실(순수한 감정)이 부딪히고 융합하는 공간은 특유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철저하게 기획된 환상과 날것의 진심이 공존하는 공간이 어떻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사람들을 매료시키는지 궁금했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내 진심을 다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똑같이 돌려주지 않을 때 오는 상처의 위험이 존재함.
하지만 아이돌과 팬과의 관계는 철저히 기획된 가식(무대 위 퍼포먼스) 이라는 방파제가 있음.
팬들은 이 관계가 통제되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서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상처받을 두려움 없이 자신의
모든 진심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음.(가식이 역설적으로 진심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문학이나 영화에서 사용하는 자발적 불신 유예(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 라는 개념이 있음.
영화가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진짜라고 믿고 눈물을 흘리는 것들을 뜻함.
팬들 역시 깊은 곳에서는 아이돌의 “愛してる” 라는 말이 나라는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
하지만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거짓말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합의함.
왜냐면 무대 위의 상황은 연출일지라도, 그것을 보며 심장이 뛰고 위로를 받는 나의 감정 만큼은 100% 진짜이기 때문.
공연장은 차갑고 치밀하게 계산된 자본과 기획의 결정체임. 조명, 동선, 멘트, 표정 하나까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의 영역임.
하지만, 무대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팬들의 환호, 눈물, 열광은 전혀 통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임.
가장 정교한 가식과 가장 폭발적인 진실이 한 공간 안에서 정면으로 부딪힐 때, 그 극단적인 대비는 일상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묘한 미학을 만들어냄.
어떻게 보면 아이돌이 일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진심을 담아내기 위한 거대한 그릇을 연출해 주는 것에 가까움.
비록 시작은 가식이었을지라도 그 공연장을 채우는 뜨거운 공기와 유대감은 하나의 거대한 진실이 됨.
그렇기에 아이돌들의 애드리브가 더욱더 강조됨
99%가 철저히 통제되고 계산된 완벽한 무대이기 때문에, 예기치 않게 튀어나온 1%의 통제되지 않은 진심(애드리브, 실수, 감정이 북받쳐 흘리는 눈물 등)
이 더욱더 빛을 발함.
늘 날것의 감정만 오가는 일상에서는 쉽게 무뎌질 수 있는 감정이, 가식이라는 어두운 배경 덕분에 진실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강렬하게 받게 됨.
또한, 나와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 한 인간과 교감하고 있다는 강렬한 유대감을 느끼게 됨.(완벽함 보다는 때로는 취약함이 사람의 마음을 더 깊게 여니까)
하지만 직장이라는 공간도 이런 가식과 진심이 공존하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흥미로운 공간이라고 인식하기 힘듦.
결정적인 두 공간의 차이는 규칙과 목적이 완전히 정반대이기 때문.
직장에서의 가식은 내 생존(월급, 커리어, 인사고과)을 위해 강제된 감정노동임. 상사에게 잘 보이거나 회사에 대한 충섬심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는커녕 에너지만 고갈되는 억압적인 느낌만 줌.
또한, 아이돌의 가식은 팬들에게 최고의 행복과 환상을 주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직장에서의 가식은 갈등을 피하고, 조직의 톱니바퀴로서 무난하게 기능하기 위한 방어기제임.
직장에서의 진심은 드러나는 순간 불이익으로 돌아옴.
상사에 대한 분노, 업무에 대한 지루함, 솔직하지만 뼈아픈 비판 같은 진실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게 만듦.
진심을 숨겨야만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에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음.
아이돌의 가식은 직장에서의 가식과 동일하게 아이돌 개개인들의 생존을 위해 행동하는 감정 노동이지만 그 감정노동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가 큼.
직장에서는 동료나 파트너가 나에게 친절하게 웃어준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구나” 라고 깊게 착각하거나 기대하지 않음.
서로가 사회생활을 위해 연기하고 있다는 현실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음.
하지만 공연장의 팬들은 아이돌들의 가식이 본인의 업무임을 이성으로는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환상에 빠지고 싶어함.
“나에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거짓말(환상)을 제공해 달라"는 합의가 성림된 공간이기 때문에, 그 가식은 비난받는 대신 열광적인 소비의 대상이 됨.
그렇다면 결국 우리 모두가 생존을 위해 가식을 하고 있는거와 마찬가지인데 가식은 과연 옳은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가식과 진심은 선과 악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닌 인간 스스로가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쓰는 도구임.
가식은 본인의 약한 마음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과 불필요하게 부딪히는 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임.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진심은 너무 무겁고 예리해서 때로는 날카로운 흉기가 되어 타인에게 폭력이 되고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음.
거짓말은 최고의 사랑이니까
누군가에게 완벽한 거짓말을 하려면 끊임없이 상대방을 관찰하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함.
본인의 기분이나 감정은 철저히 숨긴 채, 오직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한 표정과 말을 만들어내야 함.
나를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아름다운 꿈"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타적인 거짓말임.
내 자아를 깎아내면서 까지 타인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완벽한 연기자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난 헌신이자 사랑.
작중 호시노 아이는 본질적인 사랑의 감정을 모르는 자신의 텅 빈 내면을 두려워함. 그래서 “팬들을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계속 내뱉으면서, 언젠가 이 거짓말이 진짜 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람.
거짓말을 그저 속임수로 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쓰고 있음.
본인의 마음에 완벽한 진심이 없더라도, 흉내를 내고 계속해서 사랑한다고 말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자신의 안에 진짜로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
즉, 거짓말은 진심에 닿기 위해 호시노 아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노력인 셈.
그 거짓말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면 결과적으로 가장 거대하고 무거운 진실과 다를 바 없음.
